탈 진실의 세상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할 때
두 명의 노벨생물학 수상자, 데이빗 발티모어 박사와 폴 버그 박사는 모두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을 경고했죠. 그들은 “인간 종족이 변해 버리기 전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릅시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함께 써냈습니다.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42년 동안, 저는 경험, 교육, 훈련이라는 은행에 정기적으로 작은 양을 저축해왔습니다. 그리고 1월 15일, 잔고가 충분해졌을 때 비로소 매우 큰 양의 경험을 찾을 수 있었던 겁니다.
틈새의 하나님
어떤 기독교인들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연의 방법과 원칙을 두고 단지 “하나님이 하셨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요. 그래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멈추게 되죠. 인간의 지식이 늘어갈수록, 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목록의 제목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는데 그렇다면 자연에 대한 지식이 늘어갈수록 어떻게 하나님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 의 영역을 인정할 수 있는걸까요?
머리를 써 머리를!
상상해보세요. 사람 한 명이 있는 무대 위에 다른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1초 동안 그들을 바라보세요. 50년 동안 그 장면을 잊고 있더라도 전기회로를 집어넣어 인간 두뇌의 적합한 영역을 자극시키면 그들이 앉아있던 자리 뿐 아니라 입었던 옷까지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관용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답게 담대함으로 진리를 선포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기독교인들은 관대해지기 위해 모든 문화와 가치를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만약 우리가 신앙을 지키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관용은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왜’와 ‘어떻게’ 2)
C.S.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이렇게 표현했죠. “당신이 보고 듣는 것은 ‘당신이 어디에 서있는가’에 달려있다. 관점은 당신이 보는 것과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
'왜’와 ‘어떻게’
유물론자들은 자연의 목적을 부인합니다. 오로지 ‘어떻게’ 자연이 운영되는지에만 집중하지요. 영국의 물리학자 존 폴킹혼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왜 물이 주전자 안에서 끓고 있는지’에 대해 대답할 수 있다. 분자들이 빠르게 움직여서, 일부는 표면으로부터 빠져 나가거나 기체가 되기도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기독교는 과연 선한가 – 케네스 샘플스 박사
초현실주의에서는 정해진 답을 거부하면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있고 모든 의견은 동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서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기독교가 진리인가?’ 가 아니라 ‘기독교는 선한가?’ 라는 식의 질문 말이죠.
회의론자 친구들에게 건네는 말 – 케네스 샘플스 박사
만약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인다면 의미 있는 모든 것들이 깨달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나는 왜 인간의 갈망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왜 깨어진 인간인지, 나는 왜 영원한 삶을 열망하는지 그리고 나는 왜 인간인지. 그런 깨달음 말이죠. 만약 당신이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인다면 그 다음에는 기독교 말씀이 도전적이고 어려운 분야를 비추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치 태양이 우리 매일의 삶을 밝히듯이 말이죠.
최상급의 제곱 : 왕의 왕, 주의 주
또 다른 "제곱 된"표현은 "하늘의 하늘"입니다. 성경, 열왕기상에 기록되기를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천국 속의 천국, 심지어 가장 높은 하늘도 당신을 담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